성격 장애의 차원적 이해: 범주를 넘어선 새로운 관점
흑백 분류에서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성격 장애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
"당신은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또는 "그는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습니다"와 같은 진단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범주적 접근(categorical approach)'에 기반한 것으로, 개인을 특정 성격장애 진단에 '해당됨' 또는 '해당되지 않음'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이러한 이분법적 진단 방식에서 벗어나 '차원적 접근(dimensional approach)'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성격이 단순히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스펙트럼 상에 존재한다는 관점입니다.

범주적 접근의 한계
전통적 진단 시스템의 문제점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의 초기 버전들은 성격장애를 별개의 범주로 구분했습니다. 이러한 범주적 접근은 명확성과 의사소통의 용이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심각한 제한점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범주적 접근의 한계
- 높은 공존이환율: 많은 환자들이 여러 성격장애 진단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킵니다. 연구에 따르면 한 가지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의 약 50%가 다른 성격장애 진단 기준도 충족합니다.
- 임상적 이질성: 같은 진단을 받은 환자들도 상당히 다른 증상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 기준은 9가지 중 5가지만 충족하면 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증상 조합을 가진 환자들이 같은 진단을 받게 됩니다.
- 진단적 불안정성: 시간에 따라 진단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인 치료 계획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차원적 접근의 이점
- 연속적 평가: 특성의 강도를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평가하여 개인의 고유한 성격 프로필을 보다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 유연한 진단: 시간과 상황에 따른 변화를 더 잘 반영하여 유연한 치료 계획을 가능하게 합니다.
- 낙인 감소: '장애가 있다/없다'의 이분법보다 인간 성격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여 정신건강 낙인을 줄일 수 있습니다.
"성격장애는 별개의 질병 실체가 아니라, 핵심 성격 특성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 토마스 위드거(Thomas Widiger)
차원적 모델의 진화
DSM-5의 대안 모델
DSM-5는 기존의 범주적 접근을 유지하면서도, 섹션 III에 성격장애에 대한 '대안적 DSM-5 모델(Alternative DSM-5 Model for Personality Disorders, AMPD)'을 포함시켰습니다. 이 모델은 두 가지 핵심 요소를 평가합니다:
1. 성격 기능의 손상 (기준 A)
이는 자기 기능(정체성, 자기 방향성)과 대인관계 기능(공감, 친밀감)의 손상 정도를 평가합니다. 이 손상은 경미함에서 극심함까지 연속적인 척도로 평가됩니다.
2. 병리적 성격 특성 (기준 B)
다섯 가지 광범위한 특성 영역과 25개의 더 구체적인 특성 측면을 평가합니다:
부정적 정서성
불안, 분리 불안, 우울, 정서적 가변성, 적대감, 인내심 부족 등
분리
사회적 위축, 정서적 제한, 무쾌감증, 친밀감 회피 등
적대성
조작성, 기만, 과대성, 주목 추구, 냉담함, 적대감 등
탈억제
무책임성, 충동성, 경직된 완벽주의 부족, 위험 감수 등
정신병적 경향성
비일상적 신념, 지각적 불규칙성, 기이한 행동 등
미네소타 대학의 Robert Krueger와 Kristian Markon의 연구에 따르면, 차원적 접근은 임상적 유용성과 심리측정적 타당성 모두에서 장점을 보입니다. 그들은 성격 병리를 "핵심 성격 특성의 역기능적 변형"으로 재개념화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성격장애는 정상적인 성격 특성의 극단에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정상적인 자존감과 자기 주장의 연속선상에서 극단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ICD-11의 혁신적 접근
세계보건기구(WHO)의 ICD-11은 성격장애 분류에서 더 급진적인 변화를 채택했습니다. 이전의 범주적 진단을 완전히 폐기하고, 순전히 차원적인 접근을 도입했습니다:
- 단일 진단명: '성격장애'라는 하나의 진단만 존재하며, 경증, 중등도, 중증으로 심각도를 분류합니다.
- 영역별 특성: 부정적 정서성, 분리, 탈억제, 비사회성, 강박성의 다섯 가지 특성 영역에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기술합니다.
- 경계 특성(Borderline Pattern): 유일하게 보존된 특정 패턴으로, 정서적 불안정성과 충동성이 특징입니다.

임상 적용과 미래 방향
차원적 접근의 실제 임상 활용
차원적 접근은 단순한 이론적 변화가 아니라 실제 임상 실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 개인화된 치료 계획: 환자의 구체적인 특성 프로필에 맞춘 맞춤형 치료 계획 수립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부정적 정서성이 높은 환자에게는 정서 조절 기술 훈련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치료 효과 모니터링: 각 특성 차원의 변화를 시간에 따라 추적하여 치료 진행 상황을 더 세밀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낙인 감소: "당신은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당신은 정서 조절과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이러한 특성 영역에서 비롯됩니다"라고 설명함으로써 환자의 이해와 수용을 높입니다.
차원적 접근의 도전과 미래
차원적 접근의 확산에는 여전히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 임상 교육: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 측정 도구: 차원적 성격 특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고 실용적인 도구가 더 개발되어야 합니다.
- 보험 및 행정 시스템: 현재 많은 보험 및 행정 시스템이 여전히 범주적 진단 코드에 의존하고 있어, 차원적 접근의 제도적 수용이 필요합니다.
마치며: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인간 이해하기
성격장애에 대한 차원적 접근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진단 체계의 변화를 넘어, 인간 행동과 심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이는 인간의 성격을 흑백의 범주가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의 연속체로 바라보는 더 미묘하고 정확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차원적 접근은 정신건강 영역에서 인간 중심적 관점을 강화하고, 개인의 고유한 성격 프로필을 존중하며, 낙인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인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임상 실무와 연구가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인간 성격의 복잡성에 대한 더 풍부한 이해와 정신건강 치료의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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